
1860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제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의 소도시 빈디슈그라츠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슬로베니아 영토인 이 작은 마을 출신의 소년이 독일 가곡 역사를 다시 쓰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음악적 재능과 함께 충동적이고 불같은 기질도 물려받은 볼프는, 피아노·바이올린·플루트·하프·기타를 거의 독학으로 익히며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1875년 빈 음악원에 입학해 구스타프 말러와 친구가 됐고, 그해 리하르트 바그너를 직접 만나 격려를 받으며 열렬한 바그너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음악원 교수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다 1877년 퇴학당했다. 이후 음악 비평가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작곡을 놓지 않았다. 1879년에는 요하네스 브람스를 만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냉랭했다.
창작이 폭발한 것은 1888년이었다. 뫼리케의 시에 붙인 가곡 53곡을 단 몇 달 만에 써냈고, 뒤이어 아이헨도르프 가곡집과 괴테 가곡집을 연달아 완성했다. 볼프의 가곡이 슈베르트나 슈만과 다른 점은, 시를 음악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어 하나하나에 담긴 리듬과 억양, 감정의 굴곡을 피아노 반주와 성악 선율로 정밀하게 번역한다는 데 있다. 반주 파트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의 또 다른 해설자로 기능한다. 1891년의 스페인 가곡집과 1892·1896년에 걸쳐 완성한 이탈리아 가곡집은 그 정점이다. 종교적 엄숙함과 관능적 유머를 자유롭게 오가는 이 두 가곡집은, 같은 사람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른 세계를 품고 있다.
그러나 1870년대 말에 감염된 매독이 서서히 그의 내면을 잠식했다. 1897년 2월,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정신 이상 증세가 뚜렷해졌고, 익사를 시도한 후 스스로 빈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5년을 그곳에서 보내다 1903년 2월 22일, 42세로 눈을 감았다. 약 300곡의 가곡이 남았다. 지금도 리트 레퍼토리에서 가장 까다롭고 가장 보람 있는 작품들로 꼽히는 이유는, 이 음악이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시와 음악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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