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梁埈赫, 1969년 7월 10일(음력 5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다. 선수 시절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의 내야수 겸 외야수으로 활동했으며 대부분의 선수 경력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보냈다.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동한 그는 현역 은퇴 직후 사용했던 등번호 10번이 삼성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MBC Sports+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 외에 스크린야구사업, 스포츠 센터(양신 스포츠 아카데미)를 운영 하고 있다. 타격 폼이 마치 만세를 부르는 것과 같아서 붙여진 ‘만세 타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만세 타법은 야구 교본에도 실려 있지가 않은 실로 창의적 타법이며, 이를 사용한 선수는 양준혁이 세계 최초이다. 프로 야구 선수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고 양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삼성 라이온즈가 김태한을 1차 지명하면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하였다. 병역 결정을 위한 신체검사 당시 보충역으로 판정을 받으면서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전역하게 되었다. 방위 복무 전역 이후 1993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 이 시기부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데뷔 첫 해에 타율 0.341로 타격왕에 오르고, 이종범과의 경쟁 끝에 신인왕에도 올랐으며, KBO 리그 사상 신인으로서 타격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이다. 그해 130안타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16년 연속 100안타 기록을 달성했고, 1996년(151안타)과 1998년(156안타)에는 최다 안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해“배트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5년 6월 25일, 13시즌 만에 1772개의 안타를 쳐서 장종훈의 개인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특유의 만세 타법으로 장종훈에 이어 ‘기록의 사나이’란 명성을 쌓아갔다. 이어 2007년 6월 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 리그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 지금까지 골든 글러브를 모두 8차례 수상했다. 프로 야구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1993년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데 이어 1998년과 2001년에도 타이틀을 거머쥐는 등 최다 수상을 했다. 2008시즌에는 1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부진을 보이며 처음으로 시즌 도중 2군으로 내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고, 15시즌 동안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 내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한때 임창용을 상대로 한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 1999년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와 2000년 ~ 2001년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2001 시즌이 끝난 뒤 FA를 선언하여 친정 팀에 복귀해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8년 준 플레이오프 때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을 기록하였다. 2009년 5월 9일에는 대구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기존 장종훈이 가지고 있던 KBO 리그 개인 통산 최다 홈런(340개)을 경신했다. 양준혁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통산 기록은 통산 안타 수와 통산 홈런 수라고 한다. 특히 통산 홈런의 경우 시즌 홈런 1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음에도 통산 홈런 개수로 1위를 기록했다는 것에 대해 자기 스스로 놀랐다고 한다. 매 시즌 꾸준히 20개 정도 홈런을 친 게 누적이 되어서 이런 기록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와 별개로 가장 의미를 두는 기록은 통산 사사구 기록이라고 한다. 타자로서 출루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타자가 살아 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는 사사구와 출루율이야말로 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문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야구 선수 시절 최고의 순간으로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 마해영의 백투백 홈런으로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을 확정지었던 순간을 꼽았다. 양준혁으로선 아마추어 시절부터 통틀어 소속 팀이 우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뿐더러 삼성으로서도 1985년 전·후기 시즌 통합 우승을 한 것 외에 단기전 한국시리즈를 통해 우승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 있고, 더 많은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김응용 감독의 도움으로 FA를 통해 극적으로 친정 팀에 돌아온 첫 해이기도 했거니와 팀내 선배로서 힘겹게 후배 선수들을 이끌며 일궈 낸 값진 우승이었기에 그 보람이 더 컸다고 한다. 2010년 7월 26일,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2010년 9월 19일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은퇴식 및 은퇴 경기를 치렀으며, 이날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마지막 송은범과 대결에서 내야 땅볼에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 양준혁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등번호 10번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2번째 영구 결번이 되었으며, KBO 리그 9번째 영구 결번이 되었다. 당초 2011년 2월 미국 메이저 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이었으나 영남대학교 대학원 진학과 임용수 캐스터와의 친분으로 SBS와 계약하였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SBS와 SBS ESPN에서, 2014년부터 MBC와 MBC Sports+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소속사는 JH 스포테인먼트이다. 2022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김진욱과 함께 TV조선에서 야구 해설을 맡았다. 19살 어린 아내를 만나 55세 늦은 나이에 귀한 딸을 얻었다.
로그인 후 정보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