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모(한국어: 김봉모; 한자: 金鳳毛; ? – 1209년 8월 1일)는 고려의 관료였다. 그의 시명은 정평이었고, 가문은 경주 김씨였다. 그는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의 아버지였다. 김봉모는 계림(현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세린(김세린)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했다. 김봉모는 명종 재위 초기에 내시(內侍)로 관직에 올랐다. 그는 명문 가문 출신 덕분에 보호임명을 통해 관직에 임명되었다. 1176년, 김은 반란 진압에 일조했다. 이듬해 김은 명복궁 녹사(明福宮錄事)로 임명되었다. 이후 통궁면의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임명되었다. 김은 여진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언어 능력 덕분에 최충헌에 의한 명종 폐위 사건을 조사하러 온 여진 금나라 사신들을 접대할 수 있었다. 1204년 1월 27일, 김은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로 임명되었다. 그는 1209년 8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사망 당시 국무장관부관(文下侍郎平章事)을 역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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