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金鍾泌, 1926년 1월 7일~2018년 6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1·31대 국무총리로 재임하였다.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해 초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는 것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9선 의원을 지내면서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삼김이라 불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육사 선배인 박태준 제32대 총리와 함께 신당동계(新堂洞系)(혹은 청구동계(靑丘洞系))를 구성해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끌었다. 본관은 김해이며 충청남도 부여 출생이다. 민주공화당 총재와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거쳐 자유민주연합 총재를 지낸 그의 주요 거주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청구동이었다. 그는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쿠테타에 참여했다. 1951년 2월 박상희의 장녀 박영옥과 결혼했으며 196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 후 예편했다. 9선 국회의원으로 최다선 국회의원 출신이며, 1971년 박정희 정권기 제11대, 김대중 정부기 31대 DJP 연정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육군사관학교를 8기로 졸업하고 1961년 5.16 군사 정변의 중심 인물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를 창설해 초대 부장에 취임해 활약했지만, 공화당의 내분으로 인해 정계를 은퇴했다. 1971년 공화당 부총재직을 맡고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같은 해 6월 국무총리에 취임함으로써 정계에 복귀후 5년6개월간 최장수 총리를 지내며, 대덕연구단지, 민속촌등을 기획했다. 1979년 공화당 총재를 맡았으나,1981년 신군부의 압력으로 정계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정계에 복귀하였다. 1990년 3당합당에 참여하여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1995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고 초대 총재가 되었다. 2004년에 제17대 총선에서 낙마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당시 제2인자였으며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과 함께 박정희의 후계자 또는 잠재적 대안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1971년 6월 4일부터 1975년 12월 18일까지 대한민국의 제11대 국무총리를, 1998년 3월 3일부터 2000년 1월 12일까지 제31대 DJP 연정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2018년 6월 23일에 숙환으로 인해 향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친형 김종익은 7~9대 3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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