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앙리 폴 고갱 (Eugène Henri Paul Gauguin, /ɡoʊˈɡæn/; 프랑스어: [øʒɛn ɑ̃ʁi pɔl ɡoɡɛ̃]; 1848년 6월 7일 – 1903년 5월 8일)은 프랑스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도예가, 작가로, 주로 후기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 그는 또한 예술 형식으로서의 목판 인그레이빙과 목판화의 영향력 있는 실천가였다. 그는 생전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인상주의와는 구별되는 실험적인 색채와, 종합주의 양식으로 후대에 인정받았다. 고갱의 화풍은 클루아조니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대표작들의 주제는 원시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고갱은 1848년, 유럽 혁명의 격동기였던 파리에서 태어났다. 1850년, 고갱의 가족은 페루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에게 평생 지속되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프랑스로 돌아왔고, 고갱은 그곳에서 정규 교육을 받았다. 처음에는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면서 고갱은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갤러리와 전시회 방문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882년의 금융 위기는 그의 주식 중개인 경력에 큰 타격을 주었고, 결국 전업 화가로 전향하게 되었다. 고갱의 미술 교육은 주로 독학으로 이루어졌으며, 정식 아카데믹 교육보다는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 그의 미술계에 들어서게 된 계기는 인상주의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피사로는 고갱에게 멘토 역할을 하며 그를 다른 인상주의 예술가들과 기법들을 소개했다. 그는 1880년대 초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지만, 곧 더 대담한 색채 사용과 전통에서 벗어난 주제를 특징으로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브르타뉴와 마르티니크에서 제작된 작품에서 그의 원주민 생활과 풍경을 묘사하려는 성향을 볼 수 있다. 1890년대에 고갱의 예술은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타히티섬에서 서구 문명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으면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고갱은 말년에 타히티와 마르키즈 제도에서 수많은 걸작을 제작하였으나, 극심한 건강 문제와 재정난을 격던 중 사망하였다. 그 시기의 그의 그림들은 생생한 색채와 상징주의적 주제를 특징으로 하며, 사람, 자연, 그리고 정신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로 유럽 관객들 사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고갱의 예술은 그의 사후에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노력 덕분이었다. 볼라르는 그의 말년에 그의 작품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였으며, 그의 사후 회고전을 열어주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아방가르드와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와 같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와의 관계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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