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기(洪璡基, 1917년 3월 13일~1986년 7월 13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9대 법무부 장관·제19대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아호는 유민(維民) 배우자(부인)는 일제 귀족 김신석의 딸이다. 경성부에서 성장한 그는 당시 천재라 불리었으며 일제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이 일본의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인 차별 정책에 의해 그의 꿈인 교수가 될 수 없게 되었고 이후 법을 공부하고, 조선 양곡수탈 및 제국주의 일본으로의 공출 하던 본거지인 목포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했다.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 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백성들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며 세계의 외교 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 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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