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기(1942년 ~ 2000년 1월 13일)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였다. 박현기는 비디오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고, 처음에는 정교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의도적으로 로우 테크 방식을 택했다. 그의 비디오 작품들은 종종 정지된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행위 자체를 기록하는 데 그치며, 복잡한 편집 기법을 배제한다. 박현기에게 비디오는 혁신의 역사와 현실과 환상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기술적 사례에 불과했다. 특히 그는 동양적 세계관을 통해 비디오 아트라는 매체에 접근했으며, 비디오가 첨단 기술과 물질주의 모두의 정신적 측면을 구현한다고 보았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박현기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가상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가상과 현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상호 연결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정이 최 교수에 따르면, 박찬욱은 텔레비전/비디오라는 매체가 지닌 의미(즉, "기술, 환상, 물질성")와 그것이 전달할 수 있는 의미(즉, "자연, 지각, 물질성")를 조화시키고자 했다. 박찬욱은 비디오 아트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퍼포먼스, 설치, 사진 또한 그의 예술 활동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 큐레이터 김인혜는 박찬욱이 갤러리에 돌을 가져와 나체로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것부터 벽돌을 쌓고, 철도 침목을 자르고, 널빤지를 세우는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실험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예술 매체를 탐구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혜가 주장했듯이, 박찬욱은 자신의 폭넓은 예술 활동을 통해 한국 전통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이 인간의 조건과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활성화하는 작품을 창조하는 데 헌신했다.
미술사학자 정연심이 지적했듯이, 박현기의 사후 회고전(2008년 대구문화센터의 <박현기: 존재와 성찰>과 2010년 갤러리 현대의 <현기>)은 박현기의 작품 세계에 대한 새로운 연구 흐름을 불러일으켰다. 현재까지 이러한 연구 중 가장 규모가 큰 전시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로, 1,000점이 넘는 박현기의 작품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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