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박물관은 한국 최초로 신라기와에 대한 특별전시를 실시하였다. 이 전시를 통하여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기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아울러 "신라와전(新羅瓦塼)" 도록을 발간하였다. 특별전을 개최하게 된 이유는 개발논리에 밀려 파괴되어가는 고대유적을 보존하고 관리하며, 신라기와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에 비해 조금 늦은 시기부터 기와를 제작하였으나 삼국중에서 가장 다양하고 화려한 기와를 제작·사용하였다. 『三國遺事』에 의하면 서기565년경 중국 진나라 사신 류사(劉思)가 경주시가지를 보면서 '사사성장(寺寺星長) 탑탑안행(塔塔雁行)(절과 절은 별처럼 이어지고 탑들은 기러기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듯 하네)'라고 읊었다고 전한다. 이는 경주의 도처에 큰 사찰과 관공서, 그리고 고급주택이 가득 들어차 있었음을 잘 알려준다, 먼저 이번 전시의 도입부에서는 우리나라 기와의 원형이 되는 고대 중국 기와를 보여주었다. 중국에서는 서주(西周)시대(B.C 11세기)에 처음으로 기와가 사용되며, 전국시대(戰國時代)(B.C 5~3세기)부터 반원형(半圓形)의 와당(瓦當)이 유행한다. 이번 전시품 가운데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유행하였던 연(燕)의 도철문, 쌍수문(雙樹文)과 제(齊)의 수문(樹文), 진(秦)의 록문(鹿文)이 새겨진 막새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493년 낙양천도(洛陽遷都)한 이후인 북위(北魏)의 아몬드형 연화문원와당(蓮花文圓瓦當)과 함RP 수·당대(隨·唐代)(589~907)에 유행하였던 연화문(蓮花文) 등이 전시되어 고대 한국기와의 원류(源流)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신라기와에 직접 영향을 미친 고구려와(高句麗瓦), 백제와(百濟瓦)를 연대순으로 전시하였다. 고구려 기와는 집안(集安)지역의 태왕릉(太王陵), 천추총(千秋塚), 장군총(將軍塚)에서 출토된 회갈색(灰褐色)기와와 평양(平壤)지역 출토 적갈색(赤褐色) 기와를 구분하여 전시하였다. 이중 태왕릉 출토 원와당(圓瓦當)의 표면에는 주칠(朱漆)이 입혀져 있다. 이중 평양부근에서 출토된 귀면와는 표현이 매우 육감적이어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백제는 한성시기(漢城時期)부터 본격적으로 기와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는데 이 시기를 대표하는 풍납토성(風納土城), 몽촌토성(夢村土城), 석촌동고분(石村洞古墳) 출토 원와당을 전시하였으며, 백제적인 온화함이 느껴지는 웅진시기의 연화문(蓮花文) 와당(瓦當)과 사비시기의 기와를 대표하는 미륵사지(彌勒寺址) 연목와(椽木瓦)를 비롯한 연화문 와당을 전시하였다. 신라의 초기 기와는 백제·고구려 기와의 영향을 받았음을 잘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시기의 기와는 월성해자(月城垓字)와 물천리(勿川里)·손곡동(蓀谷洞) 가마터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아직 고구려나 백제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 통일신라시대에 접어들면 신라적인 기와가 활발하게 제작되는 한편 당문화(唐文化)의 영향이 기와에도 반영된다. 이 시기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거처하는 곳이 곧 불국토(佛國土)라고 생각하였으며 건물의 처마마다 불교의 기본 문양인 연화문(蓮花文), 보상화문(寶相華文), 당화문(唐華文), 인동문(忍冬紋)과 함께 조문(鳥文), 기린문(麒麟文), 사자문(獅子文), 용문(龍文), 귀면문(鬼面文) 등 실로 많은 문양이 새겨진 기와를 얹었다. 또한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가릉빈가문(迦陵頻伽文), 비천문(飛天文) 등이 나타난다. 또한 건축기술의 발달과 함께 모서리기와, 타원와, 사래기와, 치미, 착고, 연목기와, 문양이 새겨진 전돌 등 매우 다양한 문양의 기와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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